돌에 새긴 역사 '울산금석문' 발간
돌에 새긴 역사 '울산금석문' 발간
  • 이종찬
  • 승인 2013.03.12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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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상, 종교, 풍습, 문화 등 당시 삶 흔적 엿보여
▲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부설 울산문화연구소는 돌에 새긴 옛 울산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분석한 '울산금석문'을 발간했다. 사진은 동구 대왕암 절충장군묘 확인작업 모습. (울산문화원연합회 제공)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회장 한태곤) 부설 울산문화연구소(소장 정상태)는 돌에 새긴 옛 울산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분석한 '울산금석문'을 발간했다.

'울산금석문' 발간은 지난 시절 울산의 면모를 살피는 새로운 창이 하나 더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울산금석문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멸실, 훼손의 우려가 큰 울산의 금석문 자료 중 1910년 이전에 제작된 210여 기(基)가 수록돼 역사, 사상, 종교, 풍습, 문화 등 당시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소는 먼저 금석문 발간을 위해 2011년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실무위원과 조사위원을 선임해 탁본과 사진 작업을 완료했다. 2012년에는 자료의 판독문과 번역문 및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을 덧붙이는 작업을 완료해 발간했다.

금석문에는 지역별로 중구편에 65기, 남구편에 3기, 동구편에 15기, 북구편에 8기, 울주군편에 120기 등이 실렸다.

시기별로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명문(銘文)은 신라 시대에 해당하고, 임강사종 명문과 상천리 국장생 석표는 고려 시대 것이다.

조선전기의 것으로는 경숙옹주 태실비와 김복일 군수의 선정비가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자료는 모두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선정비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조선시대 때 울산에 도호부와 경상좌병영이 함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신라시대 이후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도의 관문으로써 외침을 막아낸 국방과 생산, 불교와 유교문화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했다.

12일 연구소에 따르면 울산의 금석문 발간 사업은 힘든 작업이었다. 이 사업의 대상이 되는 1910년 이전 제작되어 금석문에 관한 정확한 통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석을 많이 모아 놓은 동헌과 언양향교, 병영동주민자치센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그 위치를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특히 흩어져 있는 비석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대상 선정, 탁본, 사진, 판독 등 어느 하나 쉬운 작업이 없었다. 금석문의 기초 자료가 되는 탁본 작업할 때 물에 들어간 적도 여러 번 있었고 풀어놓은 개와의 싸움 등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 장희춘 묘비처럼 몇 자를 제외하고 전문가들도 판독할 수 없을 때가 있었고, 높은 지대에 있는 암벽의 명문을 촬영하기 위해 밧줄을 매고 오르는 등 사투를 벌일 때도 있었다.

작천정 건너편에 있는 헌산시사 연명과 중구 이규목 군수 선정비 등은 새로 정리하고 발굴한 자료라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 이외 새롭게 발견한 금석문으로 서생포왜성 남쪽 철조망으로 에워싸여 있는 암행어사 유석(柳奭) 청덕비가 있다.

"아, 우리 군수는 금의환향하였네. 특별히 모세를 덜어주고 농상을 권면하였네. 문풍이 다시 진작되었고 깨끗한 달처럼 사사로움이 없었네. 청렴하고 정직하니 백성의 칭송이 빗돌이 되었네." (중구 약사동 주연마을 도로변 조선후기 관원 '행군수 이규목 애민선정비')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수집 못한 1910년 이후의 금석문 자료와 혹시 누락된 것은 다음 기회에 속편 형식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금석문’은 규장각을 비롯한 전국의 유관 기관단체와 대학, 도서관 및 지역연구기관과 지역사 연구자에게 우선 배부될 계획이다.

울산문화원연합회는 올해 울산정명 600년 기념사업으로 '울산지리지 모음' 번역 출간을 확정하고 삼국사지리지부터 영남읍지(21종) 중 울산편을 영인 정리하고 해당 자료들을 번역하여 출간할 계획이다. 문의: 울산광역시문화원연합회 268-2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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