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 발생한 '울산보도연맹사건'과 집단 학살사건과 관련, 울산지방법원이 "국가가 공개한 명단이 아니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명단을 기준으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며 유족 24명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6일 울산지방법원에 따르면 울산지법 제3민사부(재판장 도진기)는 "국가 예산을 들여 국가 기구로 설치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경과 비슷한 조사권을 부여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게 허용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만으로 희생자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판단했다.
유족 24명은 국가가 공개한 처형자 명단이 아니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명단을 기준으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과거사위는 희생자 명단 407명을 확정한 후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 지원, 호적 정정 등을 통한 명예회복 등을 결정했고 법정 공방 끝에 유족들은 보상에 관한 대법원 승소 판결도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국가가 공개한 처형자 명단에 든 사람만 보상을 고집해 왔다.
정부는 이 사건은 1950년 8월~같은 해 8월까지 발생한 것으로, 희생자들의 사망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1955년 8월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다.
이에 과거사위 명단에는 들어 있으나 국가 공개 명단에는 없는 희생자 유족들이 소송을 벌였고 이번에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가가 비밀로 지정해 보관해온 처형자 명단에는 없으나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정한 407명의 명단에는 포함된 희생자의 유족이다.
정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표한 희생자 명단이 객관적 자료가 아니므로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부가 스스로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자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 예산을 들여 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설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검·경과 비슷한 조사권을 부여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게 허용했는데 이제 와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만으로 희생자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고 밝혔다.
앞서 2009년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유족에게 200여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며 첫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8민사부는 2009년 8월 18일 항소심 판결에서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지났으므로 유족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어 대법원은 2012년 8월 30일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400여 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울산지법은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대법원이 ‘보도연맹 소멸시효’와 관련해 확정한 판결에 따라 배우자 4000만원, 부모·자녀 800만원, 형제·자매 400만원을 기본으로 국가가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한편 울산지법은 유족들 가운데 소송을 제기했던 당시 이미 사망한 1명은 소송 당사자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노 대통령이 사과한 국민보도연맹사건은? “국민 대다수가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서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알고 있지.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잔인한 학살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국가는 알아야 한다. 바로 지금이 희생자와 유족에게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에 따르면 당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407명이며 이들은 10여차례에 걸쳐 집단으로 총살됐다.
그러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들까지 합치면 최소 870여명이 사건에 연루돼 희생됐다.
유족들은 1960년 4.19이후 유족회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으나,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유족회 간부가 구속되고 합동묘가 해체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특히 유족들은 오랜기간 연좌제에 묶여 차별을 당하고 권리를 침해당하는 등 심한 심적 고통도 받았다.
그러나 2005년 12월8일 유족 김정호(유족회 회장(67).중구 학성동 )외 218명이 진실화해위원회에 당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11월 27일 이에 대한 사실을 밝히고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의 공식 사과 ▲위령사업 및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 지원 ▲호적 정정 등을 통한 명예훼복 ▲역사기록 수정 ▲평화인권교육 강화 ▲관련 법률의 정비 ▲재발방지 위한 조치 마련을 국가에 권고했다.
앞서 보도연맹은 좌익인사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1949년 조직된 단체로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이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
이 모임은 ▲대한민국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 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 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 결집 등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만도 2만 명에 육박했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가입 대상이었으며 거의 강제적으로 가입된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알려진 바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산의 보도연맹원은 1,561명에 달했으며 이번에 확인된 407명을 포함해 적어도 870여명이 당시 울산군 온양면 대운산 골짜기와 청량면 반정고개에서 집단총살된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