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의 다방열전
정은영의 다방열전
  • 정은영
  • 승인 2013.05.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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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다방
▲ 북정공원 모습, 경찰서가 있었던 곳이다. 경찰서 정문을 나서면 바로 길 건너편에 수경다방이 있었다.

등이 휘어진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경찰서 앞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무질서하게 서 있었다.

여름이면 플라타너스 잎들이 만들어준 그늘에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북정동 중부도서관 올라가는 길옆 하꼬방 건물에 통신대 서점이 있었고 경찰서를 나오면 인도와 차도가 따로 없는 도로 건너편에 수경 다방이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그 시절 수경다방 주변의 풍경이다.

하지만 수경다방은 그렇고 그런 흔한 다방이 아니다. 드러내 놓지 못할 사연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다방이다. 울산 중부경찰서가 북정 공원 터에 있을 때만 해도 수경다방은 커피를 팔고 배달하는 다방의 목적에서는 빗나갔지만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법무공간으로는 잘 알려졌었다. 경찰서 주변에 몇 곳의 다방이 있었지만 수경다방이 단연 돋보였다.

▲ 북정공원(구 중부경찰서)에서 수경다방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수경다방은 흔적조차 없다.

수경다방은 북정공원(당시 울산중부경찰서) 맞은편에 있었다. 지금은 장춘로가 4차선으로 뻥 뚫렸다. 모르기는 해도 장춘로를 확장하면서 이 다방은 터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수경다방을 찾아간 날 울산지역에는 80㎜의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어버렸다.

옷이 젖고 나니 한 낮인데도 춥다. 따끈한 커피 생각이 난다. 북정공원 주변에는 마땅히 비를 피할 만한 곳이 없다. 상패를 제작하는 곳과 인쇄소 등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인적이 드문 썰렁한 분위기다. 그리고 혼자 나선 길이라서 왠지 서먹서먹하다. 비오는 날 돌아다녀보니 한마디로 청승맞다.

경찰서가 있었던 북정공원에 서서 과거를 회상했다. 감개무량하다. 20여 년 전, 기자시절 경찰서를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던 때의 수경다방 분위기가 기억 속에서는 분명하다. 곧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될 만큼 선하게 떠오른다.

▲ 수경다방은 흔적은 없지만 그래도 오래된 건물을 보면 그 이디쯤엔가 수경다방이 있었을 것으로 기대를 한다.

그 시절, 수경다방에 들어서면 마담이 안다고 호들갑으로 반겼고 아가씨들이 활짝 웃으며 엽차를 날라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그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립다.

그 때, 수경다방은 지하나 2층이 아닌 1층이었으며 창문은 파란 필름으로 발라져 있었다. 이 다방은 울산지역에서 유일하게 비밀대화가 가능한 방이 많았다. 처음 이 다방에 들어서면 방이 많아서 어리둥절 한다. 방 내부 불빛도 희끄무레해서 극장처럼 한참 있어야 상대방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다방 단골들은 기자들도 많았지만 사건을 수임하기 위한 법조인들이 더 많았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기자들은 수경다방에서 가끔 특종을 챙겼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특종 노다지를 캐는 광산으로 점찍은 곳이 수경다방이었다.

수경다방을 두고 사람들은 시계탑 사거리 일대 음악다방들 보다 수입이 짭짤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악다방들이 수시로 문을 닫는데 비해 수경다방은 중부경찰서가 1994년 병영으로 옮겨갈 때 까지 성업 했다. 한마디로 수경다방은 김홍신이 쓴 소설 ‘인간시장’과 다를 바 없는 다양한 군상들이 들고 났던 공간이다. 어찌 보면 인간 터미널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경찰서는 늘 통금위반자들이 바글바글 했다. 경찰서 유치장은 새벽 1시가 넘으면서부터 난전이 됐다. 유치장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혼자만 붙잡혀 와서 서럽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술집아가씨도 있었다. 수경다방 주변은 낮 보다 밤이 번잡한 곳이었다.

세상에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음악다방을 쓸 때는 당시 음악다방 DJ 이름과 다방 지도를 그려준 사람이 있었다. 오늘은 수경다방의 흔적을 찾느라 돌아다니다 보니 우연히 그 시절 수경다방 단골을 만났다. 그는 운수사업을 했던 사람이다. 수시로 운전사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각종 사고를 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경다방에 나갔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지금은 모든 일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문화의 거리에 나와서 논다고 했다. 가끔 아는 사람을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라고 한다. 불편하고 아쉬운 것은 어디를 가나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해놓아서 오래 앉아 있기가 곤란한 것이라며 웃었다.

▲ 수경다방의 흔적을 찾다가 겨우 전통찻집 간판을 발견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없다. 장사는 제대로 되는지 걱정이 된다.

그는 옛날에 다방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어서 좋았다며 담배개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뺐다 한다. 그리고 담배개비를 코앞에 대고는 빙빙 돌리며 담배냄새를 즐겼다.

그는 구 상업은행 앞 2층 가로수 다방과 중앙농협 옆 명다방, 그리고 저 아래 고궁 다방 까지도 훤하게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다방을 자주 출입하는 사람들은 사업가나 껄렁패나 둘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웃었다. 세월이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했다.

그는 “아직도 한잔에 2500원 하는 다방이 저기 성남 플라자 근방에 있다”며 심심할 때 친구들과 함께 40년 넘은 그 다방에 가는 것도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 다방은 지금도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설탕 한 숟갈을 넣은 목장우유도 판다고 자랑한다.

수경다방은 울산이 광역시가 되기 이전, 울산경찰서 시절부터 울산중부경찰서로 간판을 바꾼 이후까지 건재를 과시한 다방이었다.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비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보다 더 세차게 내렸지만 주변 골목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나 아무런 꼬투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허전했지만 모처럼 이곳에 왔다는 기대감이 그냥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략 수경다방이 있었다고 점찍은 곳에서 시계탑 사거리 방향으로 코너를 돌면 중구의 화려한 거리, ‘문화의 거리’를 만났다.

이곳은 화랑이나 연극공연장, 도예 점들이 입주하면서 문화부흥의 기회를 맞고 있다. 간판도 구청이 정한 규격에 따랐다. 반듯 반듯해서 좋기는 한데 획일적이라서 예술성이 돋보이지는 않는다. 획일 은 예술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문화의 거리 주변에는 커피 전문점들이 무수하다. 마치 커피전문점들이 도심 점령군 같다. 대원군이 왜 쇄국정책을 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전국의 강토는 외래 식물이나 어종들이 이미 오래전 점령해 버렸다.

이제는 사람이 북적이는 곳 마다 커피 전문점들이 판을 친다. 7080세대들에게 익숙했던 다방을 몰아내고 있다. 이제는 문화의 거리에서 만이라도 커피 전문점들에 밀려서 엽차를 나르던 다방들을 멸종 보호업종으로 보호해야 할 판이다.

커피 전문점들은 한잔 가격이 5천원을 웃돈다. 커피 값을 먼저 내야하고 진동하는 것을 들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커피 가져가라고 진동한다. 비싼 돈을 냈는데도 갖다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5천 원 하는 칼국수 한 그릇 먹고도 이런 커피를 마신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비밀대화에 방해가 된다며 음악도 틀지 않았던 수경다방, 삼각기를 꽁지에 매단 수경다방 배달용 오토바이는 아가씨와 함께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희미한 추억마저 빗물에 가물가물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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