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준공 그 후
태화루 준공 그 후
  • 정은영
  • 승인 2014.05.1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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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태화루가 2년여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늘 준공식을 개최한다. 참으로 울산시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당초 태화루 일대는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던 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울산시의 노력으로 울산시민의 숙원인 태화루가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신라 자장율사가 지은 태화사의 누각으로 남았던 것이 태화루다. 태화루는 익히 알려진 대로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 영남 3루의 하나로 꼽혔던 대표적 목조 건축물이다.

태화루 복원은 울산시민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무엇보다 확실한 동기부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태화루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처럼 모두 36개의 배흘림기둥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태화루 복원은 울산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울산시민들은 태화루 복원에 한마음으로 뭉쳤다. 지역 소재 기업들의 관심도 컸다. 건축비 100억원은 에스오일이 선뜻 냈다. 외국계 기업인 에스오일이 울산의 랜드마크 태화루 건축비를 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태화루는 복원됐다. 이제 시민들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목조 건축물이 생겼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처음 이 자리 있었던 태화사의 복원에 대해서도 생각을 가질 때가 됐다. 태화루 복원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면 태화사 복원은 몇 곱절의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태화사는 통도사를 지었던 자장율사가 지었다. 자장 율사는 통도사와 태화사, 경주 황룡사 탑을 세웠다. 황룡사는 자장 율사가 구층탑을 세움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된 절이다.

태화사 건립 설화를 보면 자장율사가 중국 태화지에서 우연히 용을 만나게 되고 그 용이 자장 율사에게 신라에 돌아가면 울산 황모산에 절을 짓고 태화사로 이름 하라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은혜를 갚겠다고 해서 지은 절이 태화사라고 한다. 절이 지어지고 난 후 그 마을 이름이 태화이며 태화사 앞을 흐르는 강 이름이 태화강이다. 그 용의 은혜인지는 몰라도 태화강은 울산을 관통하여 흐르면서 대한민국 공업역사의 기적을 일으켰다.

태화사는 서기 646년에 지어졌으나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절에 있었던 태화사지 12부도상은 울산시립박물관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학성동 학성공원(왜성) 정상부에 방치돼 있었다.

울산 시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태화사지 부도탑은 박물관으로 옮겨갔다. 그 탑이 박물관에 있어야 하기 보다는 태화사 부도탑이어야 합당하다. 이웃한 고도(古都)경주시는 황룡사를 복원하기 위한 밑그림을 거의 다 그렸다. 분위기로 보면 곧 황룡사 복원 공사를 시작할 것 같다.

그렇다면 자장율사가 지은 통도사. 태화사, 황룡사 중에서 통도사는 그대로 있고 황룡사는 복원예정인데 태화사만 복원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로 남는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태화사도 복원돼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적인 문제로 치부되면 안 된다. 그래야만 태화루가 더욱 빛이 날것이다.

태화루 복원 준공식은 울산시민의 자긍심을 세우는 행사이다. 태화루가 울산시민의 역사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후손들은 태화사의 복원으로 태화루의 가치를 더욱 높여야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한순간 주상복합 아파트가 될 뻔 했던 곳에 울산 역사를 다시 쓰게 한 태화루 복원에 시민들은 큰 박수를 보낸다./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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