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을 말하지 말라
소통(疏通)을 말하지 말라
  • 정은영
  • 승인 2014.06.23 0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부터는 소통(疏通)을 말하지 말자. 소통을 말하는 자는 스스로 소통하지 않음이다.

지난 6.4 선거에서 가장 많이 통용됐던 어휘가 소통이었다. 소통은 지난 선거의 아이콘이 됐다. 우리사회는 언제 부턴가 소통이 불통되면서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됐다.

사람이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전신의 기혈작용이 원활해야 한다. 이는 전신의 기혈 소통이 이뤄졌음이다. 학교가 건강하려면 교장에서부터 교사 학생에 이르기 까지 말길이 트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물 흐름이 좋은 항아리에서 콩나물이 잘 자라듯 건강한 학생들이 성장하게 된다.

기업집단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갈등을 빚는 것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회사 측은 회사 측 대로 각자의 갈 길을 가기 때문에 갈등은 계속되는 것이다.

결국 2~3개월 파업을 하고 사법기관에 누구를 고발하고, 처벌을 받는 등 각각의 상처로 만신창이가 될 때 쯤 서로 합의하고 발전을 위해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안타까워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이들이 치열하게 다툼하는 것도 결론은 소통부재다. 서로 상대방을 불통이라고 지적하지만 저울에 달면 한 치 어긋남이 없이 똑 같다. 우리는 소통을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접근하면 의외로 쉽다.

나를 먼저 내세우지 않으면 소통은 이미 80%는 이뤄진 것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나대로 상대방이 듣거나 말거나 입으로 뱉어내는 언어는 이미 불통의 중심에 서있음이다. 시궁창의 쓰레기 보다 못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소통하자는 것은 참으로 가관이다.

농부가 논에 물을 댈 때, 도랑과 논이 연결된 곳에 있는 물꼬를 튼다. 이 물꼬를 트는 것이 마른논에 물을 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른 논에는 물이 들어가면서 비비꼬인 벼가 화들짝 놀라서 자세를 바로 잡는다.

자연의 세계에서 보는 소통 현장이다. 물꼬라는 어휘도 우리는 자주 선거판에서 듣는 소리다. 상대방과 공천 경쟁을 하면서 서로 벽창호로 맞섰을 때, 로비스트들이 나서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물꼬를 트는 것이다.

우리는 소통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은 앞서 밝힌 여러 상황들에서 그 실체가 확인됐다. 뜻을 헤아려보니 소통한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자주 소통이라는 말이 사용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임을 강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강한 긍정은 부정이고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지난 6.4 지방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선자들은 또 소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 그것이 소통인데 그 뜻을 모르는 것 같다. 굳이 상대방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음을 내보이는 것과 같다.

나는 소통 하려는데 상대방이 소통하지 않으니 한탄할 일이다고 하는 것은 가식(假飾)이다. 내 논의 물꼬가 다툼 없이 트이는 것도 이웃 논 주인과의 보이지 않는 들판규칙이 정당화될 때 가능한 것이다.

들판에서 개인 욕심은 물꼬를 트이게 할 수 없다. 주변 농민들로부터 고개를 끄덕이는 인정을 받게 될 때 물꼬가 자연스레 트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는 소통을 불통으로 가져가면서 상대방이 소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거짓된 입을 바라보는 것도 시민이나 유권자들은 피곤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는 소통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

내가 시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나설 때, 시민들이나 유권자들이 박수로 화답할 때 우리 사회는 소통 물꼬가 이미 트였음이다.

소통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을 때 누가 감히 소통 하자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소통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