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약속
오월의 약속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6.05.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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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민신문]어느 햇살로 물들었을까? 그간 어디다 숨겨놓았다 이제야 부려 놓았는지, 그가 한 말은 모두 초록이고, 그의 표정은 푸르다 못해 눈부시다.

언덕위의 이팝나무 꽃은 바람결에 하얀 머리를 이고 기우뚱거리며 걸어오시는 늙은 어머니의 몸짓 같기도 하고, 한 때 보릿고개에 허기진 식구들의 팍팍한 마음을 고봉으로 담은 쌀밥처럼 잠시나마 풍요롭게 했으리라.  

길모퉁이에는 어느 간절함에 피어올랐을지 모를 민들레 홀씨가 어머니 품 속 같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바람결에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오월은 사람들에게 생동감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데 필요 불가결한 계절이다. 세상에 푸른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어린이, 그 희망을 잉태하고 낳아 길러주신 어버이, 바른 인격과 지식을 전해주는 스승, 그리고 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삶의 가치를 충만하게 하는 고마운 햇살과 신선한 녹색 물결들로 가득하다.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다’란 말이 있듯 성장기엔 부모 속을 썩이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서야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 마음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주말 저녁 어린 딸아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저녁준비를 하던 엄마에게 자기가 쓴 쪽지를 내밀었다.

이번 주에 내방 청소한 값 2000원,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1000원, 엄마가 시장간 사이 동생 봐 준 값 3000원, 쓰레기 내다버린 값 1000원, 아빠 구두 두 켤레 닦은 값 4000원 전부 합쳐 11000원. 엄마는 쪽지를 다 읽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딸아이를 살짝 껴안았다.

“참 잘했어“ 하며 칭찬을 한 후 연필을 가져와 딸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넣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를 키우며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린 값 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너 코 풀어 준 것도 무료, 너에 대한 내 사랑과 정까지 모두 무료,

딸은 엄마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딸아이는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딸아이와 소통을 하는 동안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리라. 이어 아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11,000원을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수증이며,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의 모습이리라.

아이는 분명 용돈이 궁해서 시작 했겠지만 어느덧 자기를 최고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도우고 즐겁게 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가 쓴 쪽지를 보고 자신을 키우며 얼마나 힘들고 많은 사랑을 주었는지, 이를 아무 조건 없이 감내 하신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갓 태어나 손가락 꼭 잡아주던 아이와의 첫 만남, 하루 수백 번 방긋 웃으며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던 기억,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늘 푸르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만만치가 않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매일 접하는 암울한 뉴스며 고용절벽과 인공지능, 기계화 되어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헬 조선 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중국 상하이에는 ‘효도조례’까지 제정되었다. 자식이 부모를 정기적으로 찾지 않으면 이를 제소 할 수 있고 법원 명령을 받고도 찾지 않을 경우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중국에서의 일이지만 효도를 법으로 제정해야 하는 각박한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과거 2대, 3대가 한 지붕에 살던 시대에서 1세대 혹은 독신으로 살아가는 세대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개인주의적 서양문화가 우리의 생활 면면에 파고들었다. 이렇듯 냉랭하고 소통부재의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정과 대화이다.

조금 지나면 신록은 더욱 짙어지고 오월의 성찬은 눈부실 것이다. 오월에 한 말과 표정이 모두 초록이라면 모든 이들이 소통과 배려의 초록빛 표정으로 가득 했으면 좋겠다.

또한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감동 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오월의 푸른 물결과 함께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지?

▲ 이두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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