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태화루
  • 이성웅
  • 승인 2018.01.0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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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

그 옛날

어느 묵객이 읊다 버린 조각인가

강물 속에 비친 달 그림자,

유구한 시간을 받치고 선 용바위 위로

허물어지고 또 쌓아올린 누각을 생각한다

사라진 흔적을 더듬어 다시 꿰맨 누각

행랑채를 지나 주상루 배흘림기둥에 기대본다

석공과 대목장의 땀으로 깎고 혼으로 잇댄

대들보 위엔 한쌍의 학이 자리를 틀고

용금소에 놀던 청룡 황룡이 단청에 몸을 풀고 있다

어쩌랴, 천년의 시간 속에 허물어진 400년,

난간에 올라 상류향 굽어 흐르는 물줄기 위로

댓잎 같은 푸른 말을 걸어온다

오늘 밤, 강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

어느 묵객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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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아침마다 출근길과 그리고 퇴근길엔 이 푸른 태화강을 지나친다.

30여 년 전 밀양 고향에서 울산으로 흘러와 직장을 잡아 정착하면서 태화강변을 자주 거닐며 포장마차에서

닭똥집에 소주한잔 걸치며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곤 했다.

그 땐 공단의 발전에 떠밀려 태화강은 오물과 악취로 강 속엔 물고기도 살지 못하였고 울산은 이미

악취로 병들고 공해 도시로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정이 들 것 같지 않은 도시였다.

어쩌면 혼탁한 강이 내 모습과도 흡사 닮아 있었다.

십리대숲에 태화강 대공원이 조성되자 청보리밭엔 노고지리같은 꿈 조각이 보금자리를 틀고

지천의 꽃향기로 우리 아이, 손자들이 나비처럼 뛰어놀고 있다

태화루가 복원되고 내 삶에도 꿈을 되찾았는지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가 그 어느 옛 시인의 모습처럼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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