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낙화의 변
[칼럼]낙화의 변
  • 이두남
  • 승인 2018.04.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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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울산시민신문 대표)

오래 기다렸다는 듯, 밤새 설레었다는 듯 연분홍 화장을 하고 나선 꽃 내음에 젖어드는 봄날이다.

만일 꽃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꽃의 탓이 아니라 그 꽃을 보지 못한 사람의 탓이리라

봄은 눈길 닿는 곳, 발길 닿는 곳 어디에나 꽃의 향연이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주어 참 다행이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소생하는 봄은 아름다음을 선물하고, 진실한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지만 바람 같다. 따뜻한 봄바람에 함부로 꽃을 피우더니 어느새 또 바람이 지우고 한 계절이 지나간다. 

로마 시인 루카누스는 '얼굴에 마주치는 바람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든다.'고 했다. 지상의 모든 꽃을 불러내는 봄바람의 힘은 누구에게나 활력이 넘치고 한 뼘씩 성장하게 한다. 

한편 꽃향기와 함께 불어온 훈풍은 남과 북이 하나로 연결되는 꽃길을 수놓으며 봄으로 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무기의 공포로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었던 이 땅에 어느덧 '봄이 온다'는 평화의 물결이 일렁인다.

남북 합동공연과 문화교류의 추진은 새로운 기대와 감동을 주며 잘려버린 한반도의 허리춤에도 봄의 기운이 감돈다. 가을에는 그 결실을 맺어 '가을이 왔다'는 희망적인 성과로 더욱 따뜻한 겨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은 잘 닦여져 있고 거리도 지척이지만 서로에게 갈 수 있는 길은 머나먼 미로였기에 언제나 그리움과 미움이었다.

그 길고 길었던 회한의 길을 뒤로하고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과 더불어 남북 정상회담이 분단의 겨울을 지우고 어떤 붐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부러워했던 우리 민족에게도 켜켜이 녹슬어 버린 철조망 가시와, 한 민족 서로에게 겨누었던 총부리를 거두는 날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비무장 지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쇠박새에게 맡겨 둔 평화의 메시지를 이제는 우리가 넘나들며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냉기를 조금씩 녹여가며 그 긴 세월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는 듯하다.

남북 합동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랫말이 평화의 마중물이 되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는 마음의 거리이기를 염원해 본다.

물론 비핵화에 대해 여전히 수구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해법을 도출해 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체와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경계의 고삐를 늦추는 것은 과거 실패로 점철되었던 그 방법을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잠재적 변수를 예의 주시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지난 3월 14일 영면에 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리는 우리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의해 우리를 파괴하는 위험 속에 있다. 우리는 작고 점점 더 오염되고 인구가 많아져 혼잡해지는 행성에서 내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환갑을 넘은 소녀의 녹슨 심장에도 봄이 피어나듯 한민족의 허리춤에 서로 겨눈 어리석은 총부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아무리 냉엄한 숙명이 휘몰아치는 겨울도 지지 않는 용기와 어떻게든 기쁨 가득한 봄을 불러  내어 오는 가을에는 희망의 빛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언젠가 기적처럼 휴전선이
허물어지고 남과 북이 통일 되는 그 봄날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덧 바람의 일로 꽃을 피우더니 또 지우고, 봄은 어느새 흩날리는 꽃잎처럼 날개를 달고 저만치 달아나려 한다. 낙화가 슬프지 않은 이유는 열매에 대한 배려일지도 나무와의 계약일지도 오랜 관습일지도 모른다. 

그 한 번의 개화를 위해 환력의 풍우를 견뎌낸 낙화를 경배하며 나무 앞에 서서 이들의 감정을 흔드는 바람에게 물어본다. 모든 감정은 온도라서 가장 격정의 수은주를 겨냥해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대변한다. 이 겨레 격정의 수은주는 어디쯤일까? 의문이 증폭되는 순간이다. 

그 오만의 터전에서 무수히 폭발했을 꽃송이, 그들이 누운 자리를 더듬어 본다. 바람이 날개짓 하기 적당한 온도다. 떠나기 참 좋은 날이라고 바람이 전한다.

온 종일 흔들렸다는 듯 연분홍 화장을 지우고 피어난 연초록 잎에 스러지는 봄날이다.

꽃은 떨어질 자리와 때를 미리 알아두는 것일까?

지금 우리의 때는 남과 북이 하나 되기 참 좋은 온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눈물이 그러했고, 남북 합동공연 예술단의 서로 맞잡은 손이 그러했다.

낙화가 아프지만 슬프지 않는 이유처럼 분단이 아프지만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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