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2월에 기대며
모험의 2월에 기대며
  • 이두남
  • 승인 2021.02.24 1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두남(발행인)
이두남(발행인)

성큼 겨울이 지나치는 이 길목을 2월이라 한다면 나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고요히 잠든 호수의 수면을 깨우고 한 장의 엽서를 띄우고 싶다. 한 무리의 청둥오리떼가 호수의 속살을 들추어 내며 맑은 거울을 깨뜨리고 지나간다. 우리의 근심만큼이나 깊은 수심을 어찌 측량 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물 갈퀴의 노력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다리가 짧아 놓치기 쉬운 2월이기에 1월이 건넨 바통을 놓치지 않고 3월에 건네 줘야 하는 강박감에 몇 날을 지새야 하는지 모른다.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29, 30, 31이라는 숫자를 낯설게 지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특유의 상황에서 맞이하는 계절은 동생이 입던 옷을 잠시 빌려 입은 것처럼 좀처럼 몸에 잘 맞지 않는다.

도돌이표 안에서만 뱅뱅 돌다 다시 돌아온 듯한 2월, 12월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무한 반복해서 그런지 그리 새롭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우울한 내 마음 탓일까? 오랜 세월 목청 다듬어 연습을 했으니 쉽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본 무대에 올라서면 긴장되는 미스 트롯 선발전처럼 계절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눈이 내리면 금방 녹듯이 봄이 오는 길도 쉽기도 하련만 여전히 돌아오는 길이 힘들어 보이는 것은 이파리의 호위도 없이 알 몸인 채 성급히 피어나려는 이른 봄꽃 때문인지 모르겠다.

정월 대보름 달집을 모조리 태워버려 노숙자 신세의 보름달을 바라봐야 하는 2월이기에, 한껏 부풀던 목련 꽃 몽우리가 예리한 칼 바람의 눈초리에 몇 날의 밤잠을 설치는 2월이기에, 홍매가 다 지나가도록 담벼락 너머 길목에서 숨을 죽이던 2월이기에 이 날들을 하나 하나 손꼽아 세며 보내야 한다.

어떤 동네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멈춘 지 오래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숨을 거두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지구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온도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2월의 꿈은 내 안에 머물 뿐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고. 밖이 두려운 아이들은 제 속으로 성을 쌓다 허물곤 한다. 우리가 일찍 경험해 보지 못한 엄중한 시기를 맞아 비 대면의 만남이 익숙해져 가고 모처럼 가족끼리 만남 마저도 거북한 시간에 살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어 이미 많은 나라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해 국가 면역 체계를 형성해 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접종이 시작되어 이 두려움을 머잖아 떨쳐 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어쩌면 꿈을 꾸는 듯한 날들이 2월과 함께 내 허리쯤 간신히 건너고 있는 것 같다. 배꼽쯤 지나칠 때면 태몽을 꾸던 어느 날처럼 내 꿈도 활짝 피어날 지 모를 일이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강인한 봄 꽃의 개화 소식처럼 곧 순백의 코로나19 백신이 내 팔뚝에도 활짝 피어날 날을 기대해 본다.

우수가 지나면서 매서웠던 바람은 경계를 풀고 비슷한 듯 다른 설날이 담 너머 구렁이처럼 슬그머니 지나쳐 버렸다. 나잇살만 꽝, 찍어놓고 1, 2월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벌써’ 라는 말이 /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 아마 없을 것이다.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오세영 시인의 시 ‘2월’의 일부다.

어느 달보다 일찍 지나가버리는 2월의 끝자락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저울질 하듯 기온의 변화가 무쌍하다. 꽃이 피는가 하면 그 꽃 몽우리에 하얀 눈이 내리는 봄을 맞기도 한다. 2월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강한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새 생명을 불어 넣는 가장 힘든 달이기 때문에 가장 짧은 날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한 움큼의 햇빛과 한 줄기의 바람과 함께 성장의 나이테를 그렸을 2월과 절망 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을 우리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새 봄에는 지칠 줄 모르고 피어나는 꽃의 심성처럼 기쁨과 희망에 모험을 걸어 보자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