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巨商) 신격호’와 산업도시 울산
‘거상(巨商) 신격호’와 산업도시 울산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11.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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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발전사에 큰 발자취 남긴 ‘한상 신격호’
일본 현지 경영에 유리한 귀화 끝내 거부하고
외환위기땐 가장 먼저 개인자산 출자·외자유치
신격호 스토리텔링, 울산 무한자산으로 활용해야
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해외에 거주하며 사업을 하는 재외동포를 일컫는 한상(韓商)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6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이민사에서 한상은 1960년대 미주지역으로 이민이 본격화하면서 출현했고,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화상(華商)들에 비해 규모나 경제력은 뒤처지지만, 우리 민족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근면한 성실함이 뒷받침돼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경제력을 키우고 있다.

어제 울산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위대한 한상(韓商) 20년, 세계를 담다’ 슬로건 아래 제20회 세계한상대회가 개막했다. 먼 타국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낸 자랑스런 우리 동포 경제인들의 울산 방문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 40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포 경제인 800명과 국내 경제인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회의 열기는 과거 어느 대회보다 후끈거렸고, 분위기는 활기로 넘쳐났다. 

공교롭게도 한상대회를 개최한 울산은 한상과 연관이 있는 도시다. 롯데그룹 명예회장 ‘상전(象殿) 신격호(1921~2020)’가 울산 출신이다.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스무 살 때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껌 하나를 시작으로 한국·일본 제과시장을 석권한 입지적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신격호는 거상(巨商)이면서 한상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마침 한상대회 개최 나흘 전인 지난 달 28일(음력 10월 4일)은 신 회장이 탄생한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울산에서 볼 때 신 회장은 고향에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한 것 외엔 그다지 큰 기여를 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맨손으로 시작해 롯데그룹을 국내 5위의 재벌로 키워낸 우리 산업사에서 큰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 대한 업적은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많다. ‘한국에서 번 돈을 일본으로 가져간다’, ‘이중국적자’라는 해묵은 루머는 대표적이다. 신 회장은 일본에서 번 돈을 대거 국내에 투자했다, 서울 잠실월드와 서울의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가 대표적인 예다. 또 일본에서 기업을 경영하면서 귀화 요청과 회유를 많이 받았지만 거절하고 평생 ‘한국인’으로 살면서 고향 선영에 잠들었다. 

롯데 측이 지난해 11월 신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한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는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화장품 사업 등을 거쳐 1948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키우는 등 일본에서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이후 국내에 처음 진출한 이야기와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 잠실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이르기까지 사업가 신격호의 진면목을 다뤘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홀수 달은 한국,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물며 경영을 펼쳤다. 이런 그를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경계인’으로 취급했다. 그렇지만 1997년 IMF의 관리를 받던 외환위기 때 재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1000만 달러의 사재를 출연하고 5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한걸음에 모국으로 달려왔던 이는 신격호였다. 

인물은 도시의 정체성과 품격을 높이는 핵심요소다. 울산시가 최현배, 오영수, 서덕출, 박상진을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일 것이다. ‘산업도시 울산’은 기업 관련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하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최근 울산시는 올해 공업센터 지정 60주년을 맞아 산업도시의 정체성에 부합한 대표 축제 발굴을 위해 시민토론회를 개최해 내년부터 울산공업축제를 부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관련된 세부 콘텐츠도 개발하는 중이다. 

늦었지만 ‘거상 신격호’를 울산의 인물군에 넣자. 브랜드로도 활용해 보자. 롯데그룹을 재계 5위에 우뚝서게 한 그가 울산 출신이라는 것만도 자랑스러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신 회장의 스토리텔링은 울산의 무한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는 빈농에서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국내와 일본에 굴지의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한상인이기 때문이다.

‘산업수도’를 자처하면서 우리 산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울산 출신 인물을 외면한대서야 모순이지 않는가. 축적한 재산을 민족에 남기고 간 그다. 적어도 신격호는 그 정도 대접을 받을 만한 인물이다. 한상대회를 계기로 한국, 일본 두 나라에서 묵묵히 기업을 일구며 모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거상 신격호’를 기억해주는 울산 시민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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