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는 뭐가 그리 다급한가
울산시는 뭐가 그리 다급한가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6.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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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에 편성할 만큼 긴요했나"

국내 재벌 창업주 흉상 건립 위해
추경 전체예산 88%인 250억 편성
시민 의견 수렴 등 토론회는 뒷전

 

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울산시가 뭔가 쫓기는 느낌이다. 울산과 연고가 있는 현대·SK 등 국내 대기업 그룹 창업주의 흉상을 국도변에 세우고자 관련 조례를 입법예고하고, 곧 2차 추경예산에 반영하고, 그러고도 사전에 시민 설명회 한 번 개최하지 않은 게눈 감추듯 해치우는 분위기다.

울산시는 부지매입비 50억 원과 흉상 설계·제작비 200억 원 등 250억 원을 올해 2회 추경예산안에 편성했다. 또 사업근거가 될 ‘위대한 기업인 기념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이달 중 울산시의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시민단체와 지역 여론이 ‘과다 예산’, ‘공감대 없는 일방통행식 정책’이라는 지적에도 내달 흉상 건립 대상자와 구체적인 규모를 결정할 ‘기업인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을 강행할 태세다.

울산시가 울주군 언양읍 유니스트 인근 야산 4만여㎡에 추진하는 기업인 흉상은 높이 30~40m. 기단을 포함하면 최대 60m 규모다. 내년 8월 준공이 목표다. 거대 흉상이어서 울산~언양고속도로와 울산~밀양간 24번 국도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조형물이다.

울산시는 흉상이 건립되면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러시모어산 국립공원의 '큰바위얼굴' 조각상과 같은 효과를 기대한다. 러시모어산에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 남북전쟁으로 연방정부를 구한 에이브라함 링컨, 미국의 위상을 세계무대에 올린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흉상이 조각돼 있다. 이들 대통령은 지금도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며 위대한 아메리카의 정신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울산에서 현대차와 HD현대중공업, SK그룹 등이 산업도시 울산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는 울산 출신이고, 삼성 SDI도 울산을 대표하는 회사 중 하나다. 시는 이들 그룹 창업주 중 최소 2명 이상의 거대 흉상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흉상 제작은 해당 인물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매듭지어진 후 사회적 공감대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 설립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가 전액 시비를 투입하는 흉상은 좀 더 엄격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울산시가 진행한 일을 꿰어보면 사전에 시민 설명회 개최 등 지역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할려는 의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전적으로 흉상 제작 상태로 가는 수순이다.

대규모 예산이 뒤따르는데도, 시민 의견 수렴 절차마저 부족하자 지역 여론은 탐탁지 않다. 한마디로 ‘생뚱 맞다’는 거다. 250억 원이라는 시비를 들여서까지 기업인 흉상을 제작하는 게 맞느냐는 적정성에 대한 시비다. 특히 흉상 예산이 전체 추경예산의 90%에 육박하자 그만큼 긴급한 사안이었냐고 반문한다. 시민 설명회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울산시를 비난한 것도 이런 이유랄 수 있다. 이선호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위원장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본예산에 반영하지 못한 시급한 사업을 반영하는 추경예산의 88%가 흉상 건립 예산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업인 흉상 건립이 필요하다면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당초예산에 넣어도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 지역사회에서 논의가 없었을뿐더러 울산이 산업수도란 측면을 희화화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말인즉, 도심 관문에 높이 40m에 달하는 거대 기업인 흉상을 짓는 게 무엇이 그리 다급하고, 공공요금과 물가 인상의 불황 속에서 추경예산안에 편성할 만큼 시급한 사안인가 하는 얘기다.

논란이 커지자 울산시는 흉상 건립을 통해 대기업 투자 유치에 나설 거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 러시모어산의 큰바위 얼굴처럼, 오늘날의 울산을 만들고 대한민국 산업의 초석을 세운 울산 연고 기업가들을 기리면서, 창업주 후세들이 울산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기업 활동을 이어가도록 하는 일종의 투자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위대한 기업인을 발굴, 기념함으로써 기업가 자긍심 고취는 물론 기업하기 좋은 도시 조성 이미지 만들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 이어졌고, 김두겸 시장은 지난달 31일 직접 해명하는 자리까지 만들어 “산업도시로서 자부심을 대외에 드러내는 동시에 기업의 재투자 유도 효과를 노린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김 시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울산시가 친기업 정책으로 추진하는 250억 원 규모의 기업인 흉상 건립 계획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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